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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꽃 마을에 세 들어 살고 싶은 날.

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08. 10. 1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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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꽃 마을에 세 들어 살고 싶은 날

 

 

 

 햇볕 좋은 날, 나뭇잎 비집고 내려온 햇살이 어찌나 밝고 고운지. 초록에 흠뻑 젖은 풀잎처럼 앉아 있었다.

 자라나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는 나무들. 식솔을 돌보느라 거칠어진 껍질, 슬픔과 기쁨을 덤덤히 품은 무늬가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가다가다 전망 좋은 곳에서 아득한 풍경, 온화하고 부드러운 겹겹의 산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작아지는 나를 실감한다.

 그래선지 정상에 서면 몸이 종종 가볍게 흔들리기도 해서 날아오르듯이 절로 양팔을 활짝 벌리면 겨드랑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깃털이 없이도 기분 좋게 팔랑거린다

 

 풍경은 내게 종종 사람의 관계를 의식하게 한다

 딱딱하고 뾰족한 가지들, 조금 떨어져서 보면 날카로움과 냉정함 뒤에 부드럽고 따스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이 양면성을 잘 습득할 수 있는 곳이 나에게는 산이다.

 풍경이 대자연이라면 사람은 소자연이다. 라는 성경 같은 말을 좋아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나는 입었던 옷이 헐렁해진 느낌이랄까. 걸음도 한결 가볍다. 의식적으로 덜어낸 것도 없는데 말이다.

 

 산은 늘 선물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데, 오늘은 묵밭에 흐드러진 망초꽃이 선물 중 제일 으뜸이다.

 인간의 잘못으로 상처받은 땅은 인간이 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한 결과물이 망초 꽃밭이다.

 

 어떤 사람이든 따지지 않고 품어주는 산처럼, 사람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곁을 내어주는 너와 내가 되기를 나 자신에게 먼저 주입 시키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환경에 따라 순수함이 변질하지만, 산에 익숙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산을 닮아간다는 책 속에 한 구절이 생각난다

 오늘은 산자락 펑퍼짐한 망초 꽃마을에 세 들어 살고 싶은 마음 슬쩍 놓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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