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에 드니
소쇄원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양산보가 출세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살기를 마음먹고 전남 담양 지곡리에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원 소쇄원. 언젠가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다.
손님으로 들기엔 조금 이른 아침이나 오히려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한적함이 좋다.
초입에 드니 바람을 타는 대나뭇잎이 부산스럽게 반긴다.
소쇄원 원림은 1,400평,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정감이 느껴지는 아담한 정자들, 땅끝 미황사를 두고 고색창연하다 하였는데, 이곳 또한 빛바랜 낡은 담장과 중문, 그리고 기둥과 마루, 현판들의 고색이 아름답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초가지붕의 정자와 왼쪽으로 작은 단칸 정자 두 채가 개울 건너편에 보인다.
초가 사각 정자에 대봉대(待鳳臺)라 적혀 있다. 대봉대 아래에 작은 물길을 만들어 놓은 풍경에서 옛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좀 서운하다.
대봉대에 앉으니 흙 돌담 앞에 깊은 벽오동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바로 옆에 작은 공간 애향단에는 연륜과 기개가 돋보이는 노송 한그루가 비스듬히 있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을 떠올리며 찬찬히 의미를 두고 옛 선비들의 흔적을 느끼려고 애를 써 본다
예서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였다는 그 예전 선비들을 상상하니 애향단 소나무 옆 돌담 안에 전경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물 흐름을 원활히 하려고 뒷담 밑에 받혀놓은 돌무지가 인상적이고, 자연과 가까이하려는 세심한 마음은 뒤로 트인 울타리에서 보았다.
제월당 뒤뜰 위 나지막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다가가니, 생활 한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아궁이 앞에서 장작을 밀어 넣으며 군불을 지피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방에 왜 불을 지피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문인들의 모임이 있어서 방을 덥히는 중이라고 하면서, 제월당 1.7평 작은 방으로 초대한다.
건축과 학생인 아가씨 넷과 함께 옹기종기 무릎을 대고 따끈따끈한 방에 앉으니 몸에 뱄던 새벽 냉기가 사르르 녹는다.
여섯이 앉으니 가득 찬다. 가운데는 나무 찻상이 놓여 있고, 그 위 모서리에 호롱불이 켜지고, 구석의 나무 궤에서 차 용구를 꺼내어 차를 우려 따르는 손놀림에서 정성이 보였다.
빈속이어도 발효된 차는 부담이 없으니 많이 마셔도 괜찮다며 거듭 권하는 친절에 꼭 시골 사랑방에 온 듯한 정겨움이다.
여기 원림서 의기에 뭉친 선비들의 혼이 서려 있음을 느껴보라고 하면서, 우리 문화 교류 필요성과 소쇄원에 대한 자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면의 객들이 낯설지 않은 온기 있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얼마 후 문 두드리는 문인들 발길에 아쉬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오면서 선비들이 찬사했다는 제월당에서 바라보는 먼 산 전경을 보려 했으나 흐린 날씨 탓에 보이지 않았다.
아래 협문을 나와 광풍각으로 내려섰다.
화단을 이단으로 쌓은 매대에 나무를 심고 자연을 최대로 이용한 정원에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어우러지기에 계절마다 한 번씩 와 보아야 소쇄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단다. 부산 아가씨들은 세 번째 왔는데 제월당에 들어가 앉아 보긴 처음이라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당대의 명문장가들의 찬시에서도 이 원림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지 못하였다는데, 봄이 와 녹음 우거지고 꽃피면 꼭 다시 와 보아야겠구나! 마음먹어 본다.
또 광풍각 댓돌 아래 축대 틈에서 연기가 난 것을 이상하다 했더니, 광풍각의 굴뚝이라 가르쳐주며 경주 동락당에 한 번 들러 보라고 일러준다.
광풍각 1평의 방에 서니 사방으로 문이 위로 여는 것이었다. 비록 한 평이나 문을 열면 마루 면적까지 넓어지는 공간이 된다.
여름에 지인들이 모여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가사문학을 논하는 상상을 하며 서 있는 내게 더 소상하게 소쇄원 건축에 대한 설명을 부산 건축과 학생들이 들려주었다.
‘소쇄’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 또는 속세를 떠났다, 청량하다는 뜻이라 한다.
대숲 사이로 밀려오는 바람도, 아직 돌 틈에서 솔솔 나오는 연기 내음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윽이 바라보니 빛바랜 소쇄원의 원림이 더욱 아름답고 정갈하게 느껴진다.
정원문화가 남다른 일본에서도 담양 소쇄원을 자연 풍광이 어우러진 정원이라 하여 으뜸으로 인정해준다는 말을 마음에 담고, 통대나무로 만들었다는 다리를 건너와 한 번 더 소쇄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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