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여도 좋다(2)
아침 5시에 출발하여 7시에 전주 풍남문 근처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집에서 키웠다는 콩나물 씹히는 소리도 맛도 좋다.
흰자만 살짝 익힌 달걀 두 개를 주는데, 팔팔 끓는 국밥 국물 서너 수저 떠 넣고, 구운 김 적당히 찢어 넣은 후 저어서 훌훌 마시는 맛 또한 별미였다.
전라북도 구의면과 신덕면 사이 불재에 도착한 뒤 여느 때처럼 그이는 산에 들고, 나는 혼자다.
처음 백두대간 시작하였을 때는 800m 외진 곳에서 혼자라는 적막에 가슴 졸였다. 더구나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새벽 시간, 높고 깊은 산중에 혼자 남겨졌을 때는 온갖 두려움에 휩싸여 낙엽 굴러가는 소리만 나도, 나뭇잎 출렁거리는 모습만 보아도 머리칼이 솟구쳤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도 독사 앞에 토끼처럼,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에 납작 엎드리는 고양이처럼 운전석에서 웅크리고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혼자 남은 나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왜 그 짓을 하냐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깜깜한 어둠에 나를 혼자 두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남편을 바라보며 종종 "내 남편 맞아?" 하고 말로 뒤통수를 때리기도 했었다.
산에 미친 내 남편 진심을 곰곰이 만져 보면 뜨거운 심장 어딘가에 박힌 또 다른 차가운 심장이 만져질 것 같은 의구심이 들기도 했으니.
조르는 남편에게 시달리다가 한 약속, 그 약속 안 지켜도 조강지처인데 오직 유일무이한 언약인 듯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지도에 표기된 등뼈와 갈비뼈에 있는 비포장 길과 고개라는 고개를 다 넘으며 홀로 수년을 견디다 보니 이제는 무서울 것이 없을 정도로 간이 튼실해졌다.
홀로 있는 적막함은 차츰 익숙하게 되었다. 처음 먹은 고기 맛에 홀린 짐승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치면 뭉클해지는 가슴으로 내가 시인이라면. 내가 수필가라면 하는 절절한 아쉬움이든다.
긴장감에 팽팽해지는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서럽도록 파릇파릇한 봄에서 생명을, 풍성한 여름 숲에서는 또 한 번 세상을 건너가려는 나방의 무명색 날갯짓을 만나고, 가을 풍경 속에서 화려한 아픔을 읽고, 침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겨울의 쌀알 빛 차가운 지느러미를 나뭇가지 가장자리에서 한 조각 떼어먹기도 하면서, 나지막한 나무처럼, 하찮은 잡초처럼, 그냥 연기처럼, 안개처럼 그렇게 자연 속으로 스며들었다.
양지바른 낯선 이의 묘 앞에 앉아서 시인의 에세이를 한가롭게 읽는 배짱도 생기고,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으며 혼자 노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요즘은 굴뚝에 연기 나는 풍경을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데, 불재 토담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바람에 흩날린다.
산을 넘어온 햇살이 차 앞 유리에 찰싹 붙어있다.
이젠 너무 자주 맞닥뜨린 산과 숲, 들과 저수지, 굽은 길이 낯설지도 않는 유순한 눈빛 같다.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같이 보낸 자연을 눈으로 자꾸자꾸 쓰다듬어 본다.
200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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