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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여도 좋다 (1)

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08. 10.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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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여도 좋다 (1)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끝내고 호남정맥을 걷는 중이다.

그이를 정읍 산내 소리개 재에 내려놓고 홀가분한 나만의 시간이 지도를 따라간다.

사거리 적색 신호 등에 맥이 잠시 끊어지기도 하지만 잡다한 세속 일들을 접어두고 느긋하게 핸들을 잡았다.

 

CD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멜로디가 한층 더 상큼하고 발랄하게 들린다.

하릴없이 빈둥대던 왼쪽 발이 달싹거리며 박자를 맞춘다.

 

네비도 없이 비포장 재를 오르내리다 보니 사십 중반 나이가 어느새 오십 중반에 다다랐다. 

혼자 이러고 다니는 것을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팔자려니 하고 즐겼다.

 

지도를 너무 많이 들여다보아선지 가로수 앙상한 가지도 난해한 길처럼 보인다.

길은 난해하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이 있는 풍경은 머뭇거리지 않고 내게 뛰어들었다.

 

옥정호 저수지가 보이는 언덕에 멈추었다.

물 위에서 눈을 반짝이며 해찰하고 있는 햇살이 예쁘다.

낙엽을 휙 채어 물 위에 띄우는 바람, 올망졸망 노는 쥐오리 떼가 한가롭다.

호수 건너편에서 몰려온 참새 떼가 쏟아내는 뾰족한 언어가 귀에 보석처럼 박히고, 허공에 대못 박는 까치 소리가 소란하다.

 

꽁꽁 언 나뭇가지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것도 파란 하늘 때문이 아니라 풍경과 동행하는 말랑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따스한 햇볕 사이로 비집고 드는 찬바람에 손을 내미는 것도 그래서다.

 

내 남자와 남의 남자 둘. 세 남정네와 약속한 장소로 서서히 이동하는 외진 길 비탈에서 눈 위에 가지런히 찍힌 토끼 발자국도 발견하고, 우거진 넝쿨 위 배 불룩한 박주가리 열매와 눈도 맞추며 남정네와 만날 장소에 도착했다. 

건너편에는 대나무 숲이 보이고, 멋진 소나무 한 그루 긴 팔 늘어뜨리고 마을 어귀에 상징으로 서 있다.

 

따사로운 공터에 주차하고 책 서너 장 넘겼는데 잠이 솔솔 온다.

 

서늘한 기운에 눈을 뜨니 등을 돌리고 해가 멀리 가고 있다. 

언덕 아래 호수에도 산 그림자 엎어지고, 차창 밖에 억새는 거친 손을 쉼 없이 비비고, 황소처럼 누워 있던 야산도 거슴츠레하다.

  

오고 가는 시간을 빼면 별것 아니지만, 반나절 속에서 혼자 몇 줄의 글을 읽고 사색하고. 시간도 해도 꼴깍 지고 난 후에야 바람처럼 구름처럼 걷던 남자들이 하산했다. 

 

 

-2005년 1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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