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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눈꺼풀 / 유홍준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1. 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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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눈꺼풀 / 유홍준

 

 

 

 

 

 

 

 새들이 쓰는 말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랑, 자유 비상, 행복, 그리움, 뭐 이런 말들이다 그런데 사람들 귀엔 다 같

은 말로 들린다

 

새소리가 아름다운 건 상투적인 말들을 쓰기 때문.

 

탁구공만 한 새들의 머리통 속에

독특하고 새로운 단어가 들어 있으면 얼마나 들어 있으랴

새들은 문장을 만들지 않는다 새들은 단어로만 말한다 새들이 문장을 만들

면 그 단어는 의미가 죽어버린다

 

새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갈 수 있는 건

가벼운 뼈 때문이 아니다

탁구공처럼 가벼운 머리를 가졌기 때문,

사람도 새들만큼 가벼운 머리통을 가지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은 새의 눈꺼풀을 본 적이 있다

참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 맞아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 사람의 눈매가 그랬다 채매 병동에 입원한 그 사람의

눈빛이 그랬다 날마다 빈 대문간에 나와 앉아서 먼 풍경 주워담는 노인네의

눈빛이 그랬다

그들이 쓰는 단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날아갔다

 

죽은 새의 눈꺼풀이 애틋했던 건

살면서 쓰던 단어들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

 

실천문학, 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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