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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과 어머니 / (구광렬)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1. 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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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과 어머니 / (구광렬)

 

 

  난 솥 공장에서 태어났다

 

  불매, 불매, 당신은 대장장이 풀무질하는 똑딱 불매소리*에 맞춰 아랫배에

힘을 주시고

  한산한 신작로에는 시발택시 한 대, 이유 없이 구락숀을 울리며 지나갔다

 

  화덕 위의 쇠가 풍구바람으로 달궈지고, 당신은 낮은 천장에서 늘어진 한 폭

광목들 당기며 골반을 늘렸다

  양수가 터지고, 도합 넷이서 매를 드는 토 불매소리** 들리고,

  난, 젖은 머리로 자궁 문을 밀쳤다

 

  마당에는 먹지도 못할 이팝이 흐드러지고 있었으며 난 한 발짝, 한 발짝 산

도(産道 )를 밟으며 결코 깊지 않을 당신의 쌀뒤주를 얕게 만들, 아홉 번째가

돼가고 있었다

 

  망치소리 들리고 솥 아가리, 모양을 잡아가고 산파의 손에 두 발목이 잡힌

난, 허우적거렸다 열 중 네댓이 죽어나오던 시절, 매운 손매로 엉덩이를 맞

고도 사람소리를 내지 못했다 난, 그렇게 죽은 쥐처럼 늘어져 있었다

 

  불매, 불매, 토 불매소리 멀어지고, 솥뚜껑에서 불매기 빠져나갈 쯤, 시발

택시에서 낮술에 취한 아버지가 내렸다

  난, 그렇게 이유 있는 구락숀소리와 함께 첫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의 웃음

이 될 수 있었던 내 마지막 울음이었다

 

 

 

*혼자서 하는 풀무질

**네 사람이 하는 풀무질, 청탁불매라고도 함.

 

(2012. 계간<시에>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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