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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으로 달리는 열차 / 함기석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1. 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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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속으로 달리는 열차 

   (함기석)

 

 

  

  열차가 달린다 나는 차창 밖 슬레이드 길을 본다 지붕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 검게 탄 손을 흔들며 우는 일곱의 아이를 본다 하늘에선 방울방울 검붉은 노을이 링거액처럼 떨어지고

 

  열차가 달린다  나는 잠든다  파란빛이 흘러나오는 집으로 들어간다 말들이 묶여 있는 마당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상복을 입은 여자가 나를 데리고 방으로들어간다 흰 천을 걷고 죽은 노인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여든살의 나다 아흔살의 나다 

 

  그들의 뺨을 만지자 천장에서 주르르 모래가 쏟아진다 벽에서 아기의 혀들이 돋아난 뱀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떠든다 나는 초조히 방을 나가려 한다 그러나 문은 밖으로 잠겨있고 마당에서 취한 사람들이 싸운다 말들이 싸운다 

 

  눈을 뜬다 열차가 정거장에 멈춘다 얼룩무늬 군복의 하사가 승차한다 미적분 책을 들고 대학생이 승차한다 외눈박이 고양이가 승차한다 종이로 뭉쳐진 아이도 승차한다 탑승객들은 모두 내가 탄 9호실로 온다 난 힐끔 그들을 바라본다 모두 나의 얼굴과 똑같다

 

  불안하게 반대편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검은 눈이 내리는 들판이 보인다 불길에 휩싸인 집들도 보인다 위 공중으로 수많은 레일들이 깔려 있고 열차가 달린다 나를 태운 무수한 열차들이 달린다 폭풍 속으로 폭풍 속으로

 

 

 

     

      **함기석: 1992년《작가세계》등단.

            시집:『국어선생은 달팽이』『착란의 돌』『뽈랑 공원』

 

       (2012. 계간《예술가》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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