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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과를 보러 갔다 / (이인원)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1. 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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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과를 보러 갔다  /   (이인원)

 

 

꽃을 사칭해 열매를 맺으며

열매를 차용해 꽃을 피우며

꽃과 사과 사이를

사과꽃과 꽃사과 사이를

죽어라 오가는 나무

무서워라,

괜한 꽃멀미를 핑계로

그대를 보러 가서 아직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사랑도 아니고 미움도 아닌

어정쩡한 나만 쓸쓸히 만나고 왔네, 아니

자칫 잘못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쓸쓸함

그 어정쩡한 함정을 아슬아슬 피해서 돌아 왔네

누명 같은 꽃을 훨훨 벗어던지고

오명 같은 열매를 툭툭 떨구면서

오직 이름값에만 충실한

한 알 한 알 붉은 저 애와 증의 관계를

한 치도 어김없는 공전과 자전이라 읽고 왔네

애먼 꽃가루 알러지 증상이나

더듬더듬 사칭하다 왔네

그대 몰래

죄 없는 그대를

또 한 번 차용하고 왔네, 아니

그대 목울대 안에서 분주하게 피고 지며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암산하고 있는

작은 꽃사과 하나를 똑똑하게 목격하고 왔네

 

 

 

 

 

 

             (2012년. 웹진《시인광장》1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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