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箱 폐인
배성희
사춘기 그의 첫 담배는 날개의 첫 페이지 때문인데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생각이 너무 많아 1주일 동안 겨우 10시간 잤다는 그는
어김없이 오늘도 석양일배에 충성
불면치료를 받으라는 충고 따윈 공허하다
이미 백골이 진토 된 수전 손택을 깨워 동침하고 싶다는 사람
마을성당 아름다운 조각상 성모마리아의 치마속이 궁금한 사람
복더위에 지린내 진동하는 외투를 서너 벌 껴입고 미쳐 다니는 노숙자의 유두를 꽉꽉 깨물어주고 싶다는 사람
꽃등심 수북한 식탁에 벼룩의 간을 빼앗아 바치는 문단마피아와 기회주의자를 증오하는 사람
도깨비시장 돼지부속 곤드레나물 장치매운탕 식당 주모를 사랑하는 사람
낮밤을 지킬 하이드로 살아야 해서 어지러운 속을 지글지글 태우지만 오롯한 정신 하나만큼은 놋주발처럼 짱짱한 사람
활자중독 니코틴중독 알콜중독 등산에 중독된 그는 매일 저녁 허기져 간절한 어머니 젖 대신에 산장막걸리와 모두부를 먹는 수밖에
그의 왕국 순수 예술가들에게 빨대 꽂힌 육신을 기꺼이 바치고 허허 웃으며 10년째 단벌동복 단벌하복을 고집하는 그 사람
더 불쌍하고 어리숙한 친구에게 예술지상주의 노가리를 3시간 풀더니 술 계산을 미루고 슬쩍 나가버리네?
그래 좋다 이제야말로 도망칠 기회다 사이비교 광신도를 외곬수로 마냥 벗 삼을 수는 없다
은하계 끄트머리 토굴에 숨어 일상의 즐거움과 연애하듯이 살아야겠다
그를 만나기 전처럼 땅의 열매 지슬(地實)구워먹고 살찌운 나의 혈육과 알콩달콩 부대끼며 살고 지고 살고 지고
아아 그러나, 그러나 밤새워 불면의 눈알 번뜩이며
이상의 날개를 펄럭이며 광풍을 몰고 씽씽 날아서
詩魔는 기어코 땅굴을 찾아내
뜨거운 삼지창으로 나를 콱 찍어먹으러 올 것이다
내 불온한 감자 하나가 독이 오를 즈음에
외상外傷 / 김은상 (0) | 2014.04.29 |
---|---|
자라 / 김신용 (0) | 2014.04.29 |
전조 / 강신애 (0) | 2014.04.29 |
동태 눈알 / 정끝별 (0) | 2014.04.29 |
그게 사람이지 / 이훈식 (0) | 2014.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