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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 김신용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4. 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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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김신용

 

 

 

 

 

 

  저기, 자라가 걸어오네

 

  못생긴 뭉툭한 돌멩이처럼 걸어오면서도, 마치 호수가 강이 떨어뜨린 물

방울처럼

 

  자라는 참, 대체 자는 것인지 자라는 것인지

 

  그 물방울에서

  네 개의 물갈퀴 달린 발을 꺼내 들고, 파이프를 문 모자처럼

  목을 꺼내들고, 풀밭 위를 천천히 산책이라도 하듯

  걸어오네

 

  자라는 참, 마치 심장이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등에 너와, 너와집이라도 지은 듯이

 

  그 등에, 딱딱하게 굳은 갑피를 얹고 긴 잠의 동굴을 휴우, 이제야 겨우 빠

져나온 듯하면서도

 

  자는 것과 자라는 것의, 그 동음이어 속에서 걸어오네

  몸속에 자는 것과 자라는 것을, 마치 자웅동체로 지닌 것처럼

 

  자라는 참,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둥글고 납작한 시선처럼 보이면서도

 

  등에 무겁게 덮인 갑피에 동굴의 벽화 같은 무늬가 어룽져 있어도, 그것은

결코 슬픔의 무늬가 아니라는 듯이

 

  물의 부력이 없어, 중력의 외투를 겹겹이 껴입은 듯하면서도

  척추가 갑피로 변한 등이, 결코 낭떠러지가 아니라는 듯이

 

  자라는 참, 네 개의 물갈퀴 달린 발이 무슨 수륙양용쯤 된다는 듯이

  파이프를 문 모자처럼, 느긋이 걸어오네

 

  마치 호수가 강이 떨어뜨린 물방울, 물방울처럼

 

  그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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