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여자가
식은 밥 고봉으로 퍼서
묵은 지 쭉쭉 찢어 올려놓고 입안으로 밀어 넣어요
붕어 배처럼 불룩한 입으로 옆에 신문을 들여다보아요
부도덕한 인간들과 도덕적인 인간들이 같은 페이지에 실렸어요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들이 또 같은 페이지에 실렸어요
갑과 을을 같은 면에 실어 놓고 언론은 공평과 정의를 흔들어요
밥을 삼키는데 남편과 찍은 사진이 보여요
정신없이 걸어온 긴 시간이 괜히 슬퍼서 목이 메려고 해요
스테인리스 수저에 눈물이 그렁그렁 흔들리다 반짝거려요
더러는 햇볕처럼, 빗물처럼 머물다가
노곤할 때 부드러운 눈매로 하늘을 바라보리라 하던
창밖에 풍경을 바라보며 무릎에 모포를 덮고
벽난로 옆 소파에 앉아
낙엽에 가랑비 속삭이듯 책을 읽으리라 하던
늙어 잠이 많아지더라도
우아한 순간을 꾸벅꾸벅 졸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소박한 품위를 식은 밥 위에 올려놓고 또 씹어요
신문이 사회면으로 바뀌었어요
생활고에 자살한 기사가 실렸어요
아기 우유를 훔친 여인도 보이네요
그 여인의 울컥거리는 눈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
묵은 지 올려놓고 또 밀어 넣어요
삐져나오는 밥알을 욱여넣으며 거울을 봐요
몰락한 지성이
나를 닮은 여자가..... 쉿.
- 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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