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여성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한 여성 시인의 고독한 죽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첫 시집 『아무도 없어요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솔직하게 내보이며 여성문학에 작지 않은 발자취를 남김.(2012년 5월10일 타계)
단식기도 / 박서원
1
그해 여름은 창백했었다
가지마다 휘어진 잎들이 무성한 거리에는
낳아도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 득실거리고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수차례 매질을 했으나 대낮이 깊을수록 대낮의 빛깔은 사라질 뿐 어디서 불어오는 뼈아픈 향기일까
나는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못했다
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주여.
그해 여름은 장마도 지나쳐버렸다
하얀 접시처럼 떠 있는 태양의 견고함 아래
먹지도 배설하지도 못하고 좀약 냄새나는 골방, 지긋지긋한 찬송가만이 나를 일으켜 자꾸 살라고 살라고 으르렁거리고
그동안 내 속에서 터를 익혀가던 악마는 찬송가의 예민한 침에 자꾸 기절해갔다
어머니, 어머니, 살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아요
그해 여름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 이건 도박이에요 나는 매일 매일 나무를 심어야 해요 공부를 해야 해요 내 딸아 그런 건 나중에 하렴 너는 지금 역신을 물리쳐야 해
그래 여름 나는 꽃 자주빛 꽈배기가 된 전신으로 형벌이여 형벌이여 되묻고 되물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주여.
- 난 태양을 찬미할 수 없게 되었지 건강을 집요히 추적했지만 12시간을 자야만 정상인 나에게 상상은 무리였어 이파리 한 조각도 무거워 항상 헐렁한 걸 원했지 누구나가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지만 난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
「실패 」부분.
소망
낮에는 살구꽃
살구꽃으로 살다가
밤이 되면
모자를 눌러쓰고
여행이나 떠나볼까
내일은 어찌하나
잘게 씹히는 상념들
낮 동안 쏟아지던
햇빛의 알맹이들
주머니에 채워두었다가
밤이 되면
책상 위에 풀어놓고
불꽃이나 붙여볼까
행여나 하며 살을 태우던
나날들
이제는 좀 평안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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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따뜻한 눈꽃으로 나를 할켜줘 / 나귀에 빨간 망토와 외투를 싣고 / 내가 그집 앞을 지나면 종달새 우짖게 해줘 / 종일토록 비가 내리면 / 비옷과 장화로 물의 동그라미 속에서 놀게 해줘 / 나는 첫닭이 홰치는 날 첫 도토리 캐는 다람쥐 / 살랑살랑 엉덩이 흔드는 미풍 / 댓돌에 가지런히 놓여 달빛 받는 작은 신발이야 / 내 키는 아빠 품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어 / 사람들이 돌과 화살로 내 영화를 망치지 않게 / 감독해줘 / 아빠, 여긴 떠날 수 없는 낙엽의 늪지대야 / 잠시라도 봄날 뜨락의 병아리떼라도 몰고와 / 내 가녀린 몸뚱어리로 엄마되게 해줘 / 토담에 먼지 진흙 내려 쌓여 늙은 과부 외씨버선 / 만들지 말고 / 당신이 최초로 모종한 엄마 꽃밭에 / 엉겅퀴라도 좋으니 그 손길로 나를 심어줘 / 심해엔 가라앉는 섬이 가로막고 있어 / 아빠, 삼나무 같은 당신 손으로 나를 흐르게 해줘. / 아빠.
박서원 「꿈으로 내려가는 길, 『이 완벽한 세계』(세계사. 1997)
김정란은 박서원의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에 붙인 해설에서 그의 시를 “시니피에의 투명함이 거의 완전히 증발해버린 불투명한 시니피앙의 덩어리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의 “혼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이는 모든 언어들의 어지러운 춤”은 현란스럽게 분출되며, 이런 것은 “어떤 심리적 콤플렉스의 축”을 따라 출렁이며 흘러간다. 그 콤플렉스의 정점에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시적 자아에게 억압의 존재이며(여성적 자아는 아빠의 품에서 성장을 멈춰버린다.) 동시에 그의 세계를 보호하고 감독해주는 후원자다.
「꿈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시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이 시편에서는 무질서와 혼란을 뚫고 가엾은 딸의 단말마적인 외침들이 솟아난다. 그 외침들은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내면의 상처로부터 발원하고 있는데, 그 상처는 ‘아버지’의 부재와 결부되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서원에게 ‘아버지’의 따뜻한 돌봄과 감독의 부재는 너무나 깊이 팬 상처다. 아빠는 그가 아주 어릴 적에 가족의 곁을 떠난 것일까. “늙은 과부 외씨버선”의 이미지는 그가 어떤 이유에서건 아빠가 없는 편모 가정에서 자랐음을 암시해준다.
너무 일찍 아빠를 잃어버린 그는 영원히 성장을 멈춰버린다. 그는 “아빠 품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어”라고 직접적으로 발언한다.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강박증이 되어 그의 무의식에 달라붙은 채 그를 빨아먹는다. 그래서 그는 성장을 멈춰버리고 자신을 작고 귀여운 다람쥐, 미풍, 작은 신발의 이미지로 고정시킨다. 작아진 그는 ‘없는 아빠’에게 할퀴어 달라거나, 종달새를 우짖게 해달라거나, 물장난을 치며 놀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러다가 시적 화자는 느닷없이, “내 가녀린 몸뚱어리로 엄마 되게 해줘”라고 말한다. 그는 딸―엄마가 되어 아빠와 한몸이 되고 싶다는, 언뜻 퇴행적이고 도착적인 욕망을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 원칙의 지배를 받는 곳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다.
그의 퇴행은 무의식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마침내 그는 영원한 미숙아가 되어 “떠날 수 없는 낙엽의 늪지대”에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채 자궁―늪지대 속에 있다는 퇴행적 사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시적 자아는 사람들이 제 삶을 망칠지 모른다는 강박증에 싸여, “당신이 최초로 모종한 엄마 꽃밭에 / 엉겅퀴라도 좋으니 그 손길로 나를 심어줘”라고 노래한다. 축축한 자궁―늪지대 속에서 그는 ‘아빠’를 향해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우고 자신을 “흐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클라리사 P. 에스테스는 앤 색스턴 · 에디트 피아프 · 마릴린 먼로 · 주디 갈란드 같은 여자들의 삶에 대해 “영적 기아 때문에 본능을 다친 여성들의 행동 양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박서원이 보여주는 막무가내의 광기, 파괴적 언어의 분출, 삶을 악화시키는 저 무시무시한 강박과 혼란에 대한 열망은 그가 자신의 다친 본능을 치유하기 위한 일종의 신내림 같은 의전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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