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을까?
성수선 작가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란 책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기습이라고, 신나고 경쾌한 댄스곡이 폐부를 찌르고 인생을 관통하는 예리하고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고.
나는 성수선 작가가 이 노래를 예민하게 듣고 예리하게 쓴 걸 읽으며 아무나 작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강남스타일> 젊은이들은 다 알겠지만 일흔이 넘으면 모를 것 같아서 적어 본다.
어땠을까 (내가 그때 널)
어땠을까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어땠을까 (마지막에 널)
어땠을까 ( 안아줬다면)
어땠을까 ( 너와 나 지금까지 행복했을까)
작가 말마따나 이런 생각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하는 보편적인 노랫말이기에 그냥저냥 경쾌한 가락에 몸을 흔드는데, 작가는 흘려듣지 않고 밑줄을 그었다.
사업을 늘렸더라면 어땠을까 ( 흥했을까? 망했을까?)
대출을 하여 집을 샀더라면 어땠을까 ( 재산이 불었을까? 이자 메꾸다가 살던 집까지 날렸을까?)
친구 권유에 주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 친구 따라 해마다 외국 여행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소심한 나는 " 아니야! 아냐!"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진 집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내 복이라 여겼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깜짝 이벤트 선물 추첨을 수없이 했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으며, 주일마다 복권을 빠지지 않고 수십 년을 사대는 남편도 겨우 본전치기 몇 번 했을 뿐, 그래서 나는 선물 세트 같은 그 어떤 순간을 솔직히 탐하긴 했지만,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은 없다.
지금까지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소식하며 평안하게 살자는 나의 성격 탓이다. 그래서 남들은 이웃 동네 드나들 듯이 하는 외국 여행 못 간 것도 내 탓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어쩔 수 없이 뒷북을 치고 있다.
나는 어떤 사유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있긴 했다
닥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어서.
언젠가 아들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친구네는 은행 대출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이 올라서 팔고 또 집을 두 채나 샀다는 말.
나는 아예 그런 계획을 해본 적도 없었다.
기회를 잘 이용하는 재능이 있었으면 고생도 덜했을까?
집이 두 채가 되고 세 채가 되면 살림이 넉넉해져 가족이 행복했을까?
아이들에게 재산을 넉넉히 물려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서로 애틋하게 안부를 묻고 말랑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어른이 된 나의 아들과 딸은 부모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 준다.
열심히 살면서 잘 키워주었다면서, 고맙다고 서슴없이 말을 해 준다. (하기야 아비가 팔순이 되어도 새끼에게 짐이 된 적이 없으니)
3대 독자인 아들이 송파 행정학교에서 방위 복무를 했는데, 부잣집 친구와 놀다가 들어와서는 우리 집이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잣집을 무조건 동경하지 않는 분별 있게, 의젓하게 철이 든 아들이 가슴 뭉클하도록 고마웠었다.
나의 두 아이도 삶이 왜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도 티 내지 않고 알뜰히 사는 아이들에게는 어땠을까? 라는 뒷북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방관하였던 내 안에 나를 위로하며 뒷북치고 있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