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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잎들이 바람 그네를 타고 있는 날

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20. 4. 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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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중순까지 단풍나무는 마른 잎을 미련처럼 집착처럼 붙들고 영혼 없이 흔들리게 하더니, 요 며칠 내가 잡초를 뽑고 밭에 비닐을 씌우는 동안 홀연히 떠나보내고 봄빛이 앙증맞은 어린잎을 붙들고 있다.

어른 늙는 속도보다 아이들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린잎이 바람 그네를 타고 논다.

 

모든 활엽수는 초겨울이면 잎을 다 떨구는데, 새로운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익숙했던 것을 붙들고 있는 나처럼 단풍나무도 새순이 돋을 즈음까지 낙엽을 붙들고 있었나 보다.

한 몸이었다가 헤어져야 하는 그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시간이 어디 쉬운 일인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란 말이 근사한 소박함으로 들리지만, 마지막 시간을 바라보는 앞모습이나 떠나는 뒷모습의 헛헛함에 갖다 붙이기엔 마음이 아프다.

 

사계절을 함께 어울려 살아온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 화장을 다 지우고 웅크린 단풍잎을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늙어 습관처럼 살아온 터를 지키고 있는 시골 어르신들이 보인다.

노인들은 하루하루를 쿨하게 이별하면서 늘 추억 언저리를 서성인다. 그러면서 점점 야위는 몸과 숭숭 뚫리는 기억을 두려워하는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아련해진다.

나의 어머니도 빠르게 진화하는 컴퓨터 시대에 살면서 그 옛날 케케묵은 아날로그 방식을 나에게 주입하며 먼지처럼 사라져 간 먼 시간 뿌연 뒷모습에 고즈넉하다가 지척인 듯이 기억을 거듭 읊으신다.

 

추억에 젖어 혼자서 또는 두셋 모여서 양지나 음지에 앉거나 눕거나 하며 뒤척이는 몸짓은 낙엽처럼 홀가분하지 않다.

인생의 고원에 다다른 여생은 연꽃처럼 이슬 속에서 선잠 깨듯 하품하여도 곱게 피울 수 없는 사위어 가는 뼈마디에 통증만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의 미래가 어르신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방향의 키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내 가슴도 조금씩 떨린다.  

 

단풍나무 언저리에 돋아난 꽃들이 키가 자그맣다. 올봄 가물어도 물을 자주 주지 않았다.

여연 스님의 책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 나서다.

<산천의 모든 나무는 자기 생명 리듬에 어긋나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한다. 생존 보존을 위해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꽃도 수분이 모자라면 죽기 전에 꽃을 피자는 생리작용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제 한 몸을 위해(또는 생활고로) 아이를 낳지 않기도 하고, 제 식솔을 버리기도 하는데 식물은 반대다>

 

단풍나무 사이를 수런거리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면 어린 잎맥에서 흐르는 수액의 비릿한 향기가 흐른다.

 

잔디에 떨어진 나무의 씨앗과 그 나무 아래 심어 놓은 하얀 맥문동 씨앗을 먹으려고 아침저녁 찾아드는 이웃이 있으니 그는 참새와 콩새다. (콩새는 이름을 몰라서 인터넷을 한참이나 뒤졌다.) 

멀찌기서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니 콩새가 빤히 쳐다보며 "뭐 해, 빨리 찍어 발 저려"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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