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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by 김낙향 2020. 4.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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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참을 드시고 담배를 피우며 쉬시던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버지도 미루나무도 없지만, 늙은 내가 어린 나와 나란히 구불구불한 둑길에 기록된 당신의 생애를 읽습니다. 붉게 여물어 가는 수수와 노랗게 익어가는 나락 무성하게 달린 고추처럼 나도 길러진 당신의 식물이었고. 사과나무, 감나무, 호박 넝쿨과 텃밭의 상추까지 자식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풍경이 당신의 서책입니다

정성 들인 필체가 이제야 보입니다

 

아버지의 서책 위로 경운기가 지나가네요

 

고추밭이랑에 잠겼다 떠올랐다 하며 하루를 물질하던 아낙이 경운기에 타고 집으로 가네요

고추밭에 잠겨있던 하체를 깜빡 잊고 상체만 흔들흔들 가네요

어머니처럼 가네요

 

경운기 방귀 냄새는 미루나무 둑까지 올라옵니다

적막하게 번지던 아버지 담배 연기처럼

 

 

素然김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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