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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비었더라고

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by 김낙향 2022. 6. 1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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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비었더라고

 

 

 

 

왔었다면 장승같은 노송 밑을 지나 발간 손바닥으로 바람의 중력을 감당하고 있는 단풍나무 옆으로 걸어갔겠지 두리번거리다가 마당에 웅크린 몸 반 공기 반인 잔디 사뿐히 밟았을 테고 몇 발짝 더 두리번거리다가 수탉에 쫓기는 암탉 날갯짓 소리와 마주쳤을 테고

 

햇살이 도톰하게 쌓인 마당을 건너 빨랫줄에서 호흡 수련하다 삐끗한 내 다리 한 짝을 집게로 집어 놓았더군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는 그늘을 기웃거려 보았더라면 쪼끔 열어둔 방문과 눈이 마주쳤을 텐데 고개를 갸웃 내미는 탁자 위 컵이 보였을 테고 책꽂이 책들이 침묵을 깨고 입 냄새 펄럭펄럭 뿜어대며 나의 일상을 고자질하였을 텐데

 

적막의 무게와 고요의 부피가 느슨해질 즈음이면 저녁밥을 짓느라 참새가 처마 밑을 들락거리고 투명하고 뾰족한 음률로 저무는 풍경에 간을 맞출 때 바람은 혼자 마당에서 양은 대야 굴리며 놀기도 하지

 

빈집은

빈집이 아니라네

 

 

<에움길 시집 / 김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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