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월 초닷새날
오늘 오후는 너무 힘들었다.
울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난감한 순간을 경험한 오후다.
친정엄마가 돈이 없어졌다고 사나흘 전부터 성화하더니. 오늘은 저녁 식사 준비하는 부엌에 오셔서 통장과 도장이 없어졌다고 또 성화다.
어젯밤 돈 찾느라 여기저기 뒤적거릴 때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있던 자리에 없으면 "엄마가 치웠겠지"라고 했더니 한사코 안 만졌다며 네가 안 가져갔으면 어디 있냐고 다그친다.
치매약을 드신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좋아지지 않고, 지금은 삼한사온처럼 엄마의 증세는 반복된다. 요즘은 단기 기억이 없어져서 금방 드신 것도 잊고 조금 전에 행동했던 것도 잊고, 누가 당신 물건을 훔쳐 갈 것 같은지 자꾸 숨기시고, 훔쳐갔다며 안절부절이다
엄마가 잘 감춰둔 그 돈은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언젠가는 생뚱맞은 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옆에서 계속 왜 통장이 없냐고 미운 일곱 살처럼 그러길래, 엄마, 저녁 드시고 같이 찾아봅시다 하면, 화가 잔뜩 찬 목소리로 "내가 다 찾아보았다. 내 방에는 없다." 하신다
저녁을 먹은 후 엄마 방에서 통장 찾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장롱을 뒤지고, 가방 속을 확인하고 티브이 밑 서랍도 이불장 속 이불 사이도 다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다시 엄마 양말 서랍을 뒤진다. 언젠가 버선목에 넣어둔 돈을 찾았다는 말이 생각나서. 아래 서랍, 위 서랍을 열어 양말을 다 끄집어내다 보니 양말 목 속에 빳빳한 것이 만져지길래 꺼냈더니 통장과 도장이다.
"엄마, 여기다가 숨겨두고 왜 딸을 의심해. 너무 기분 나쁘네" 하고 소리를 높였더니 "내가 왜 이러니. 빨리 죽어야지" 하며 애들처럼 엉엉 운다.
그 울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만 그래도 속상하다.
엄마의 자식은 여럿이지만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아 모실 생각을 못 하고, 엄마가 아파트를 싫어하고, 그렇다고 아들 며느리가 시골로 내려올 상황도 아니고, 먼저 태어난 실수로, 엄마가 그렇게 소외시키는 출가외인이 어쩌다 엄마를 떠맡게 되었지만, 종종 다른 형제들에게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연의 마음이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는 두어 달이라도 모셔갔으면 하지만, 어쩌다 마음먹고 모셔갔을 때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부려도 한 달이라도 꼭 붙들고 있기를 바라지만 내 희망 사항일 뿐.
치매 교육을 받을 때 치매 부모를 학대하는 것은 자식이라 했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남이야 괴이한 사람 아니고야 남의 부모를 어찌하겠는가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도 남에게는 그리 고약하게 하지 않는다
엄마는 같은 자식이어도 딸이라 더 미덥거나 아니면 만만해서 말을 아끼지 않고 성격대로 역정을 내고, 딸도 엄마라서 그 역정에 대꾸하면서 언성을 높이곤 한다.
서로 삐치기도 잠시, 밥을 챙겨드리고, 아무 일 없듯이 웃으며 같이 달그락달그락 수저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다.
엄마의 병이 속상하고 화도 나지만 안타깝고 애처롭기도 하다.
치매라는 병, 이해하고 병이려니 해도 감당하기 벅차서 지친다.
누구는 괘념치 말고 허허 웃으며 넘기라는데, 글쎄... 한치 건너라고 말이 쉽지. 그냥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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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들 왜 엄마를 가련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없겠는가.
하느님의 사랑을, 부처님의 자비를 입으로 달싹거리지만 난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도 후회하며 반성하고, 노력하고, 애쓰다가 상처를 주고받으며 견디다 보니 고해성사 횟수가 자꾸 늘어난다.
치매 엄마와 살면서 터득한 것은 화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것이다. 엄마와 왈왈거려도 금세 잊으시니까.
그리하여 요즘 엄마와 다투며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도 살아냈음을 확인하려는 듯이 엄마와 나는 여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말씨름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