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움길 / 김락향
나무가 인간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쏘다니지 않아서라는 철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고
꼭 맞는 신발을 신고도
나처럼 살지 않으려고 발자국을 끌고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를 베꼈다
쏘다니던 나의 발목 움켜잡아
잠시 담벼락에 기대 놓던 신발 목마름도
눈치채지 못하였으니
내 몸을 갉아먹으면서 불어난 나이가
그래서 퍼진 국숫발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 국숫발 사이로 지푸라기처럼
풀풀 빠져나가는 시간 담담한 습관에 매번
흔들렸던가
올여름 볕이 유별나게 따가웠던 것은
살면서 나답지 않았던 내가 하얗게 바랜 야윈 뼈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정수리를 찔러대서다
바람이 차가운 손바닥으로 귀때기를 후려치는 날도
품지 못했던 나의 삶이 내리치는 회초리 같아
순간 움츠러드는 것도
들창에 설핏 비껴드는 노을에 가슴이 시린 것도
에움길 심지를 돋우어서다
≪ 애움길 시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