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제가 오래 살게 되더라도
슬픔의 무게를
기쁨의 무게를 저울에 달지 않게 하소서
똑같은 행복이
똑같은 불행이 없듯이
외로움의 깊이도
슬픔의 두께도 다 다르니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게 하소서
노랫말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게 하소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권태로워도 품위를 잃지 않고
소소한 일을 하며 늙어가게 하소서
남의 불행을 보여주면서 나의 행복을 확인시키시고
남의 아픔을 보여주면서 내 아픔이 견딜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신 분
늙어서 생산적인 일을 못하더라도
허망함과 외로움으로 빈둥거리며 눈물짓지 못하게
살아내야 하는 삶을 맑은 정신으로
말없이 찾아오는 늙음을
떳떳이 맞이할 수 있도록 하소서
김락향 시집 ≪무릎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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