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정맥류
이영혜
엄마의 다리에는 언제부턴가
그녀가 걸어온 길이 검푸르게 돋아 올랐다
나는 젊음을 빨아먹은
시간의 거머리들이 이제 그녀를
떠나려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경작할 수 없는
칠순의 폐답 (廢畓)
더 이상 위로 펌프질할 수 없는 물길은
메말라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므로
가늘어진 팔과 다리 창백한 살빛 아래
드러난 엄마의 고지도 (古地圖)를 읽는다
저 길을 밟아 밥을 빌어 오고
수십 번 이삿짐을 옮겼을 것이다
저 길에서 나의 길도 갈라져 나왔을 것이다
이제 길은 옹이처럼 툭툭 불거지고
점점 좁아지며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마도 앙상한 저 생의 무늬는
내가 다 갉아먹고 버린
낙엽의 잎맥일지도 모른다
파삭파삭 금세라도 부서져 내릴 듯한
엄마의 길을 따라가며
나는 잠시 내 발길을 되돌려 보는 것인데
어느새 내가 밟아온 길들이
내 팔뚝과 정강이에도 퍼렇게
거미줄처럼 인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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