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리듬에 기대어 달아나는 나와 나의 타자들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5. 16. 17:16

본문

리듬에 기대어 달아나는 나와 나의 타자들 

  

  얼굴 없는 익명성이 난무하는 시뮬라크르 시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우리의 삶이 변한다. 이러한 시대에 실존적 자아에 대한 확신은 있기는 한 것일까? 한때 뜨거운 세상에 발바닥을 데인 적이 있다. 그래서 뜨겁게 세상을 달구기 위해 머리 위에 태양을 자라게 했다. 너무 강렬해서 살인까지 하게 하는 그런 태양 말이다. 태양이 녹아 정수리로 흘러내릴 때까지, 온몸이 지글지글 탈 때까지 하지만 지금도 닿고 싶은 태양의 나라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세계는 늘 멀리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일상의 알레고리 속에서 나는 달아난다.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끝내 나의 그림자를 잡을 수 없다. 달려간 만큼 멀어지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는 일상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타자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혼돈과 불안 속에 슬픈 발목의 시간을 견디며 적당히 해체되고 있다. 뭐라 말 할 수 없는 위태로운 것들로 가득한 세계 속에 우리는 자신을 말 할 수 없음에 좌절한다.

  규칙과 반복이라는 소리 없는 리듬이 우리의 내부부터 고요히 무너지게 한다. 사방으로 분산 된다. 우리가 도달할 곳은 어디인가. 분해된 우리의 잔해는 무엇으로 호명해야하며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우리가 필사적으로 그려온 일상의 음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1. - 올림표

 

  가지런하고 타일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괜찮습니까

 

  황홀하거나 타일의 방에서 만나요

  슬픈 발로 서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오, 판결문처럼, 규칙과 반복

  하얀 타일을 들고

 

  엄숙하게 선서해요 고요한 정사를 위해 타일들과 결혼해요

 

  타일을 신고 걸으면 나는 두 발이 빛나는 사람

 

  당신의 가슴은 달고 사과처럼 차가워요

  따뜻한 물로 발을 씻고 두 발을 앞으로 내밀어요 발톱을 가진

 

  심장이 됩니다,

 

  더 슬픈 발로 서 있는 사람이 됩니다

  당신들은 괜찮습니까

 

  타일 하나가 깨지는 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 하고

  발은 유죄를 선고 받지만

 

  타일을 타인처럼 사랑하면 돼요 타일과 걸어요

  슬픈 발과 슬픈

 

  발을 동시에 내밀면 심장으로 걸을 수 있고

  타일은 소리를 갖게 됩니다

 

  양말을 벗고 타일 앞에서 만나요 박동 소리를 들어요

  발이 타일을 깨고 나가는 소리를

 

  아픈 발의 증언을 

 -여성민,「타일들」(『시와 세계』봄호)

 

  타일은 반짝인다. 반짝이는 순간 타일은 태어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익명성으로 존재한다. 네모난 타일들처럼……. 메말라 가고 파편화 되어 가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을 말한다. 시적화자는 스스로“타일을 깨고 나가”는 행위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응전의 모습을 보인다. 너무 치밀하고 견고해 무엇 하나 받아들이지 않고 자의든 타의든 소통이 단절된 현실 속 자각적 인식의 깨달음이다.

 규칙과 반복은 리듬을 낳는다. 일상의 반복이며 낯익은 리듬의 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삐걱거리며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삶의 표정에 당황한다. 화자는 그러한 타일의 반복과 규칙이 불안하다. 아름답지만 “당신은 괜찮습니까”라고 묻는 역설적 질문은 혼란으로 가득 찬 현실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수많은 타일은 화자의 분열된 주체이며 유령화 된 자아로 볼 수 있다. 타일을 통해 화자는 자신을 익명적 존재로 호명하게 된다. “타일들과 결혼해요”, “타일을 타인처럼 사랑하면 돼요”에서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해보지만 세상과의 불화로 인한 혼란을 증폭시킬 뿐이다.

  “타일”이 “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은 좀 더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화자의 바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여기서 “소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이며 “발이 타일을 깨고 나가는 소리”이며 “아픈 발의 증언”이 된다. ‘시인은 연민하는 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것이다.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을 애도하며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있다. 그 손길이 축축하다.

 

 

  2.- 내림표

​​

  고통을 연주하는 음악이 아름다워도 될까

 

  방금 전까지

  수천 수만 갈래의 현(絃)으로 착란을 연주하던

  악공이 떠나고

 

  버려진 악기는 말하지

  누가 날 연주해 주세요 당신을 위해 노래할 거에요

 

  리듬은 이번 생의 음악이 잠시 머무는 거처, 떨림을 어쩌지 못하는 악기에게는 윤리가 없고

  그러나

  고통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저 악기를 어루만지는 것은 손가락이 없는 바람이거나 어둠

  수많은 현은

  더 이상 밤을 건너가는 계단을 건축하지 못하고

  누군가

  방금 전까지 당신의 것이었던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이미 끝나버린 음악의 음계를 기억해내는 데 하루를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비명에는 음계가 없다

  나는 리듬을 증오한다​

​ -유병록,「악공은 떠나고」 (『포지션』봄호 ) 

 

  ‘악공’과 ‘악기’는 나와 타자의 관계이다. “음악”은 그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 매개이며 동시에 결과물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없어도‘음악’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공과 악기는 사랑하는 연인이거나 분리된 자아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분리된 자아의 이중화 또는 분열된 자아와 만남은 그로 인한 불화를 통해 자아의 내면을 응시하게 한다. 이제 악기만 남아“고통을 연주”하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손가락이 없는 바람이거나 어둠”이다. 악공이 떠나면 악기는 아무 것도 연주할 수 없어야 윤리적이다. 하지만 악기는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나를 연주해 주세요. 내 현을 가닥가닥 어루만져 주세요”라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어찌 이 상황에 음악을, 리듬을 연주할 수 있단 말인가. “고통을 연주하는 음악이 아름다워도 될까”라고 자문하는 것이다.

  비명은 한계가 없다. 비명은 고통일 뿐이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끝나버린 음악의 음계를 기억해내는 데 하루를 바치기도 하”며 지난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 음악이 아름답다고 한다. 아름다울 만큼 처연한 사랑의 비의를 연주하는 시이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걸고 벼랑 끝에 서는 일이다. 힘겹고 처절한 사랑의 본질을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리듬을 증오한다​”는 절규가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사랑의 시이며 사랑이 끝나가는 시이다. “리듬은 이번 생의 음악이 잠시 머무는 거처”라고 시인은 말한다. 생을 연주하는 음악은 어떤 멜로디일까? “수천수만 갈래의 현(絃)으로 착란을 연주하던/악공이 떠나고”다음에 악기를 연주할 사람은 누구인가.

 

 

  3.- 제자리표

 

  내 여행은 늘 전복을 전복한다.

  잉어는 비린내가 나서 싫지만

  나는 잉여의 삶을 살고 싶었다.

 

  가둔 물고기가 싫어

  싱싱한 날것을 먹으러 이바라기에 간다.

  상큼한 바다를 보러 이바라기에 간다.

 

  이바라기, 이바라기 불러보면

  잊었던 바리데기가, 해바라기가

  구름 위를 뛰어오고, 그러나

 

  나는 이바라기에 도착하지 못한다.

 

  내 여행은 늘 순수를 역진화한다.

  방구들을 두드리다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고

  몸이 시간을 엎지르는 게으름을

  사랑하기로 자주 마음 먹는다.

 

  꿈을 밀고 방문하는 이명과

  한 번도 보듬지 못한 굳은 살과

  냉장고 안에서 싹을 틔운 감자는

  이봐, 樂이 생을 밀고 가잖아.

 

  잉여는 꿈도 꾸지 못하므로

  가끔 즐거움이 필요하므로, 이바라기에 간다.

  아픈 사랑니와 삔 손가락과 이불장 속

  구름의 환상을 버리러 이바라기에 간다.

 

  누군가 비행기표를 선물하고

  누군가 무릎담요를 덮어 주었으므로

  어깨를 기대고 싶었다.

  손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바라기에 도착하지 못한다.

 

  나누던 인사를 차갑게 접으며

  흰 꽃 같은 웃음을 지우며

  이바라기 바닷가 대신

  집 앞 강가를 거닌다.

 

  물결의 행과 행 사이엔 빙어가 살고

  빙어와 잉어는 시어詩語와 같은 종류의 물고기가 아닐까

  이바라기에 없는 잉어는 이곳에 없고

  이곳에 있는 빙어는 이바리기에도 있지 않을까

 

  내 여행은 늘 지금을 지각한다.

  잉여는 꿈냄새가 나서 이젠 싫지만

  나는 잉부의 삶을 살고 싶었다.

 

  갇힌 언어가 싫어

  팔팔 뛰는 시어를 잡으러 이바라기에 간다.

  붉은 핏물 뚝뚝 흘리는 시집을 낚으러 이바라기에 간다.

 

  이바라기, 이바라기 불러보면

  가난한 내 친구 요꼬의 동생, 준꼬가 뛰어오고

  준꼬의 연인, 이즈미가 물결 위로

  텅 빈 사랑을 밀며 온다. 그러나

 

  이바라기행 비행기는 연착 중이다.

  -정원숙,이바라기엔 잉어가 없다」(『시사사』3~4월호)

 

  시적 화자의 삶은“아픈 사랑니와 삔 손가락과 이불장 속/구름의 환상”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불안하다. 시 안에 드리워진 “허기”와 “불안”과 “고독”의 냄새를 부정 할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거의 도달할 뻔 한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삶의 근원적 간극을 인정하는 것이다. 끝내 화자는 이바라기에 갈 수 있을까? 여러 이유로 이바라기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 아니 꼭 가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늘 미루어지고 순간은 희미한 안개 속에 사라진다. 오늘의 부재이다. 자아의 부재이다. 모든 것은 지워지거나 지연된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나 미래일 뿐 지금은 없다. 지금의 꽃은 모두 시들거나 피지 않는다. 만질 수 있는 꽃은 내 곁에 없다. 어리석은 질문과 오답들이 끊이지 않는 날들이다. 가망 없는 희망 속에 살아간다. “전복을 전복” 시키고 “순수를 역진화”시키는 삶의 양식 속에 우리가 담겨 있다. 이리 저리 흔들리며 뭉개지고 끝내 사라진다. 나는 나를 호명하는 순간 자아의 조각들은 다시 분해한다. 일상은 새로운 옷을 입거나 벗으며 날개를 달거나 모자를 쓰고 “늘 지금을 지각”한다. 우리는 늘 그러한 잡을 수 없는 일상의 편린 속에 미끄러지고 있다. 타자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아의 모습을 환기시켜주는 시인의 목소리이다.

  “잉여의 삶”을 꿈꾸며“텅 빈 사랑”과“樂이 생을 밀고”연착하는 이바라기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붉은 핏물 뚝뚝 흘리는 시집을 낚으러”이바라기에 가야 한다. “이바라기”,“잉어”,“잉여”,“잉부”등 언어유희와 함께 리듬을 타며 흐르는 행과 행사이 우리는 언제까지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이다.

 

 고통이 기교를 낳고 기교가 리듬을 낳는다고 했던가. 리듬은 모여 음악을 이룬다. 음악은 음표들의 비명을 모아 짜낸 피륙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천을 어깨에 두르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한다. 시인들은 혼돈의 세계를 자신 만의 언어로 그려 내고 있다. 불온하거나 혹은 불안으로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어 자기 존재의미를 성찰하는데 집중하게 한다. 그리하여 숨 막히는 현실을 조금 덜 아프게, 덜 쓸쓸하게 견디게 해준다. 오늘도 우리는 삶을 연주하고 있다. 그 음악이 슬프고 아프고 때론 비명이 될지라도 음악을 멈출 수 없다. 리듬 속으로 미끄러지며 우리는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바라기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김미정 시인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2009년 《시와 세계》 여름호 평론 당선. 시집으로 『하드와 아이스크림』(시와세계, 2012)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中.

 

'마중물 > 시인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구의 언어로 말하기/ 송종규 시인  (0) 2014.05.16
시와 현실 그리고 현실 너머  (0) 2014.05.16
습지의 머위잎처럼 / 정화진  (0) 2014.05.16
입술 / 허수경  (0) 2014.05.16
슈렉과 아버지 / 한세정  (0) 2014.05.1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