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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의 머위잎처럼 / 정화진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5. 1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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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지의 머위잎처럼

  

      정화진

 

  삭제된 풍경을 절개하면

  그 속의 시간이라는 것은

  시큼하다 못해 쓰거워진 김치독과도 같다

  뒤섞인 세월의 혼돈이나 파렴치함으로

  그 어둡고 붉은 속으로

  피냄새가 좀체 가시지 않는 오월의 문맥을 끌고가듯

  때국을 끌고가는 늙은 여인들, 또는 문장들

  기억이 내장된 옷가지 보퉁이를 비끌어 안고

  석양 속으로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걸어 들어가는 거지떼 같다

  그래, 또 쓰겁다고 쓰면 그 문장은

  머위잎이다

  삶아 물에 담궈도 쓰겁기만한 생애일 것이다

  피냄새가 가시지 않는 마을의 구석구석

  엉겨붙은 얼룩들 위로 파렴치한 세월이 웃자라 있듯이

  늙은 여인들이 삭제된 풍경 속에

  습지의 머위잎처럼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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