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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멈칫하던 날

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20. 8. 1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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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맛비에 지친다. 티브이 화면 속 거대한 바다로 변한 마을들, 산사태로 변을 당한 사람들, 아, 어쩌나! 어쩌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집도 잃은 사람들, 황망하고 막막하고 화가 나서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동네도 들로 가는 농노는 이미 무너지고 깊이 파여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다고, 논둑이 무너졌다고 읍사무소에 신고하는데, 물에 잠긴 마을과 산사태로 변을 당한 것에 비하면 너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함이 되어 미안하고 민망했다.

 

내가 사는 집도 지척에 산이 둘러싸여 있다.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너무 커서 무섭다.

장대비가 연일 쏟아지면 나무가 쓰러져 집을 덮치지나 않을까? 산이 무너지지 않을까? 잠을 설친다.

 

경북 북부에도 많은 비가 내린다며 산사태에 대비하라는 안전 문자가 연일 와서 불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 산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소박한 만찬을 즐기던 가족이

아내가 부엌에서 소면을 삶고 남편은 방에서 수저를 놓던 다정한 미소가 

밥을 다 먹고 식구들 그릇을 포개 놓던 평안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설마 설마 하며 억지로 잠을 청하던 밤이

황망한 슬픔으로 말을 잃게 하는 것이 번개 치듯 그리 잠깐일 줄이야 

 

몇 번의 계절을 보내고 이 상처가 아물어도 아문 상처 옆에는 신발장에 새 구두와 헌 구두가 나란히 있듯이 슬픔과 고통으로 범벅된 기억이 짝꿍처럼 나란히 기대어 있을 것 같다

조각 잠을 자지 않아도, 상처가 덧나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상처에 딱지가 떨어지지 않아도 사람들은 뜰이나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어떤 이는 고기를 굽거나 소면을 삶아 가족과 먹을 것이다. 견디며 함께하는 식구들을 위해서.

그리고 평상에 누워 달그락거리며 같이 밥 먹던 보이지 않는 식구나 이웃을 생각하며 별을 올려다보겠지.

사람을 좋아하는 느티나무 아래서 단란하게 추억을 나누었던, 아스라이 사라진 인연의 이름을 소환하며 술잔도 기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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