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를 먹다 / 오영록
한 편의 명시였다
요동치는 마음처럼 꿈틀거리다
시시로 변하는 상념같이
한번 꽂히면 변할 줄 모르는 외고집처럼
쩍 달라붙은 빨판
해체하듯 토막을 내 접시에 올리니
마디마다 요동치는 것이
잘 못 배치된 언어처럼 아우성이다
구와 구의 충돌이다
하나의 끈, 하나의 연이 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며
몸이 머리가 되기도 하고
제가 제 몸을 빨아대기도 하는 음율
허둥대며 발버둥치다 접시를 벗어나는 언어
끊어지고 비틀어진 시어의 조합들이
아비규환으로 서로 밀쳐내기도 하다가
공상과 망상의 나락으로
공멸해 버리는 낙지 한 마리
아니, 한 편의 시(詩)
사유의 오류를 가득 밴 시편은
갯벌을 삼킨 낙지처럼
이빨 사이 힘줄로 걸리기도 하고
콧잔등으로 혓바닥으로 쩍쩍 달라붙고 있다
시는 이런 것이라는 듯 아주머니
통으로 한 마리 돌돌 말아준다
달다
문학일보 신춘문예 당선 - 오영록 시인
고등어자반
좌판에 진열된 간고등어
큰 놈이 작은 놈을 껴안고 있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수많은 인연 중에
전생에 부부의 연이었던지 죽어도 한 몸이다
부부로 함께 한다는 것이
고행임을 저들은 알고 있을까
지그시 겹으로 포개진 팔 지느러미가
고생했다고, 미안하다고 가슴을 보듬었다
죽어서야 온전히 이룬 부부의 연을
묵묵히 받아내는 모습이다
죽은 눈동자엔 파도가 출렁이지만
배를 열어보니
아내처럼 텅 비어 있다
마지막까지 온전히 보시해야
열반에 드는 것인지
소금사리 와스스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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