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하나 없나요
강원도 수산리에 빈방 하나 없나요
거미가 허공을 투명하게 엮고
파랗게 벽을 시침하는 담쟁이 행랑채라도
오랫동안 껴입었던 수십 겹의 삶을
한 꺼풀씩 벗으며 자연이 되는 동안
벗어버린 나의 허물 때문에
나무는 인간이 되는 꿈에 사로잡히고
쥐어짜고 비트는 소나무의 자학이 유행하는 사이
봄은 사라지고
숲이 절망으로 다다를 즈음
나의 DNA가 식물의 엽록체로 바뀌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음이
몸이
나를 떠나 살지 않게
어디 빈방 하나 없나요
끊임없이 변형되는 인생 계약서와
청구서가 찾아올 수 없는
굴피지붕 아래
낙엽으로 도배한, 방 하나 없나요
- 素然 -
* 《시에티카》2015/
《 탄천문학》2018/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