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외진 시간에

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by 김낙향 2018. 3. 20. 22:25

본문



외진 시간에

 

 

먹물 같은 밤 시어가 뇌심까지 파고든다. 이 시를 채워야 하는데, 채워야 하는데, 메아리만 아득히 흩어지는 밤 째깍째깍 뾰족한 초침이 귀를 뚫고 뇌막을 걷고 있다.

 

누군가 쾅 닫는 현관문 소리에 심장이 번쩍 눈을 뜨자 깨진 밤의 껍질 사이로 오래된 수채가 보인다. 마당 끝에 붉은 과꽃, 병아리 부리에 낀 상춧잎, 꽃받침에 쌓인 까만 분꽃 씨앗, 새를 날것으로 삼키는 허공을 묵인하는 하늘까지 여백에 슬그머니 끌어넣는다. 이렇게 기억의 수채를 담았다 덜었다 하다가 허비한 시간 때문에 시커멓게 탄 밤은 더 깊어지고 길을 찾지 못한 조급증이 시인의 몸을 열자고 한다. 그래 시인의 감성을 맛보자. 소매도 걷지 않고 바다를 건너는 시인을, 날것을 즐기는 시인을, 잠든 꽃잎 속에 기척을 듣는 귀와 고등어 뱃속에서 사리를 발견한 눈을 맛보자.

 

시인의 몸을 열었다. 몸속은 휴일 지하상가다. 어떻게 된 걸까. 시를 굽느라 내장까지 다 끌어다가 쓴 걸까. 창조의 적막을 견디다 녹아버린 걸까.


여전히 초침은 뇌막을 두드리는데 흩어진 시어들은 기워낼 재간이 없다.

 



       - 소연 -



'나의 뜰 > 마음 안에 풍경.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쟁이  (0) 2018.03.21
객지의 내재율  (0) 2018.03.20
빈방 하나 없나요  (0) 2018.01.24
눈 오는 날  (0) 2018.01.06
시골 장  (0) 2017.09.20

관련글 더보기